베트남에서 맥주는 문화였다. 퇴근 후 동료들과 길거리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마시는 "비아 허이(Bia Hơi·생맥주)"가 베트남 저녁의 상징이었다. 아시아에서 중국 다음으로 많이 마시는 나라, 세계 8위 맥주 소비국이었다. 그런데 그 문화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2019년 도입된 음주운전 무관용 원칙, 2026년부터 시작된 특별소비세 인상, 건강을 의식하는 소비자들의 행동 변화가 동시에 맥주 시장을 흔들고 있다. 덜 마시고 더 비싸게 마시는 시대가 왔다.

①  시장이 얼마나 변했는가 - 숫자로 보는 지각변동

2023년부터 지금까지 베트남 맥주 시장의 핵심 지표들이 나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1인당 연간 맥주 소비량이 2023년 46리터에서 2026년 약 41리터로 줄었다. 다년 최저치다. 인사이트아시아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설 연휴 맥주 소비도 전년 대비 5.8% 줄었다. 설날에도 덜 마신다는 것은 단순한 경기 침체 현상이 아니라 소비 행동이 구조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가장 큰 변수는 2019년 도입된 음주운전 무관용 규정이다. 베트남은 2019년부터 운전자 혈중 알코올 농도 기준을 사실상 제로로 강화하고 엄격하게 단속한다. 조사에 따르면 베트남 소비자의 82%가 운전이 필요한 날 음주를 아예 피한다고 답했다. 이로 인해 식당·호프집·노래방 등 현장에서의 맥주 소비가 55%나 줄었다. 집에서 사서 마시는 소비는 늘었지만 현장 소비 감소 폭을 상쇄하지 못한다.

세금도 올랐다. 베트남 정부는 2026년 맥주에 붙는 특별소비세를 기존 65%에서 80%로 올렸다. 2031년까지 단계적으로 90%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분석기관들은 이 세율 인상이 소매가를 18~22% 끌어올릴 것으로 추산한다. 맥주 한 캔이 더 비싸진다.

 

②  하이네켄이 1위가 됐다 - 사이공맥주의 추락과 역전극

이 어려운 시장에서 승자와 패자가 나뉘고 있다. 2018년까지 베트남 맥주 시장은 사베코(사이공 맥주)가 42%의 압도적 점유율로 1위였고 하이네켄이 34%로 뒤를 쫓았다. 2023년에 이 순서가 뒤집혔다. 하이네켄이 43%로 1위가 됐고 사베코는 33.9%로 밀렸다.

왜 이런 역전이 일어났는가. 음주운전 단속이 강화되자 소비자들이 "가끔 마신다면 좋은 것을 마시자"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하이네켄은 프리미엄 이미지를 가진 수입 브랜드다. 저가 대량 소비 시장이 줄자 프리미엄 시장에서 강한 하이네켄이 상대적으로 유리해졌다. 사베코의 주력은 가격 대비 가성비 제품이다. 전체 시장이 줄어드는 환경에서 가성비 시장이 더 빠르게 쪼그라들었다.

사베코의 고통은 주가에서도 보인다. 2017년 태국 음료 대기업 타이비버리지가 사베코 지분 53.59%를 인수할 때 약 49억 달러(한화 약 6조7,000억 원)를 냈다. 그런데 지금 사베코 시가총액이 24억~25억 달러로 줄었다. 타이비버리지의 장부상 손실이 약 37억 달러(한화 약 5조600억 원)에 달한다. 반면 하이네켄은 2025년 2분기 베트남에서 매출이 약 10% 늘었다고 보고했다.

 

③  시장이 죽는 것이 아니라 바뀌고 있다 - 세 가지 새 흐름

첫 번째 흐름은 프리미엄화다. 소비자들이 덜 마시지만 더 좋은 것을 마신다. 프리미엄 맥주 시장 점유율이 2025~2026년 35.5%로 확대됐다. 졸리베·하이네켄의 고급 라인·칼스버그의 프리미엄 브랜드가 이 흐름을 이끈다. 하이네켄이 베트남 시장에 37억5,000만 달러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 흐름을 반영한다.

두 번째 흐름은 크래프트 맥주의 부상이다. 페이스터 스트리트 브루잉·하트 오브 다크니스·퍼브루 같은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들이 호찌민·하노이 도심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있다. 아직 시장 점유율은 약 1.5%에 불과하지만 MZ세대의 취향을 이끄는 트렌드 브랜드가 됐다. 마시는 경험 자체를 즐기는 소비자들이 주요 고객이다. 세 번째 흐름은 무알코올 맥주다. 침투율은 아직 4.2%로 낮고 소비자의 82%가 "술 없으면 맥주가 아니다"라고 응답하지만 음주운전 단속이 계속되는 한 무알코올 시장의 성장 여지는 있다.

 

★  편집부 평가

베트남 맥주 시장은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바뀌고 있다. 음주운전 단속·세금 인상·건강 의식이 한꺼번에 작용하면서 "많이 마시고 싸게 마시는" 시장이 "가끔 마시고 좋은 것을 마시는" 시장으로 전환 중이다. 이 전환 과정에서 가성비 전략을 쓰던 브랜드들은 고통받고 프리미엄 포지션을 가진 브랜드들은 기회를 잡는다. 크래프트 맥주 분야에서는 한국의 소규모 양조장 기술과 감성이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시장이다.


출처: B-Company Japan "Vietnam Beer Market 2026: Heineken 43% overtook Sabeco 33.9% since 2018 reversal" (2026.06) · The Investor "Vietnam beer market slowdown: per capita 41L, SCT 80%, price up 18-22%, Tet -5.8%, premium 35.5%, non-alcoholic 4.2%" (2026) · Moneywise/Yahoo Finance "Heineken $3.75B Vietnam 2025 volumes +10% vs Sabeco weakest decade Carlsberg double-digit decline" (2026.07) · Inside.beer "Sabeco VND50,000/share VND64T cap $37B paper loss Thai Beverage" (2025.12) · The Shiv "Vietnam Beer 2026: SCT 65%→80%→90% 2031 craft Pasteur Street Heart of Darkness Furbrew 1.5%" (2026) · InsightAsia "82% avoid alcohol driving 55% on-premise decline Sabeco 84% awareness 72% purchase"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