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경제가 3분기 9.95% 성장이라는 놀라운 수치를 내놓는 동안 슈퍼마켓 진열대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소비자들이 라면·세제·유제품 같은 생활필수품은 더 싸고 용량이 큰 제품으로 갈아타면서 전자제품과 귀금속에는 수십 퍼센트 더 지출하고 있다. 닐슨IQ와 켄노(Kenno)가 2026년 상반기 베트남 소비자 패널을 분석한 결과 생활필수품 실질 수량 성장이 약 1%에 그쳤다. 같은 기간 전자제품과 귀금속은 20~50% 성장했다. 소득이 늘었는데 지갑은 더 조심스럽게 열린다. 그런데 그 지갑을 여는 순간 프리미엄을 선택한다. 베트남 소비자들이 보내는 엇갈린 신호를 읽어본다.

①  숫자로 보는 역설 - 전체는 성장하는데 생필품은 제자리

2026년 1~8월 베트남 전체 소매 판매가 5,235조5,000억 동(약 2,045억 달러)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3% 성장했다. 물가 상승분을 빼면 실질 성장률이 7.6%다. 9월도 전년 동월 대비 14.1% 성장하며 흐름을 이었다. 숫자만 보면 베트남 소비 시장이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세분화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닐슨IQ가 2026년 1~5월 기준으로 분석한 생활필수품(FMCG) 성장률이 4.3%였는데 이 중 가격 인상이 3.6%포인트를 차지했다. 실제로 팔린 수량 기준 성장은 약 1%에 그쳤다는 뜻이다. 소비자들이 더 많이 사는 것이 아니라 비싸진 것을 어쩔 수 없이 사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는가. 에너지 비용이 급격히 올랐다. 씨미고(Cimigo)에 따르면 2026년 2월 이후 휘발유(RON 95) 가격이 22%·경유 가격이 43% 올랐다. 에너지 비용은 식품·물류·생산 원가 전반에 파급된다.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 압박이 통계 물가보다 훨씬 크다. 씨미고가 추적한 소비자 신뢰지수가 이 압박을 그대로 보여준다. 2025년까지 60%대를 유지하던 긍정 소비자 심리가 2026년 2분기에 41%까지 급락했다. 3분기에 54%로 회복됐지만 여전히 예전 수준에 못 미친다.

 

②  생필품은 아끼는데 프리미엄은 왜 더 잘 팔리는가

역설적이게도 같은 기간 고가 제품 카테고리가 폭발했다. 전자제품과 귀금속이 20~50% 성장했다. 프리미엄 식품도 마찬가지다. 마산그룹의 프리미엄 라면 브랜드 오마치(Omachi)가 두 자릿수 성장을 유지하며 매출총이익률 50% 이상이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수익성을 기록했다. 왜 일반 라면은 아끼면서 프리미엄 라면은 더 사는가.

인베스트베트남(InvestVietnam)과 씨미고가 공통으로 분석한 이유가 있다. "선택적 업그레이드(Selective Up-trading)" 현상이다. 베트남 소비자들이 일상의 지출을 통제하는 대신 건강·안전·감성적으로 중요한 카테고리에서는 프리미엄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매일 먹는 기본 식품은 더 큰 용량의 저렴한 제품으로 바꾸지만 자녀를 위한 영양 식품·본인의 건강기능식품·특별한 날의 선물·고장난 전자제품 교체에서는 좋은 것을 산다. 닐슨IQ는 이를 "소비의 양극화"라고 표현했다. 중간 가격대가 압박을 받고 저가와 프리미엄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있다. 경험 소비로의 이동이다. 씨미고 Q1 2026 보고서에 따르면 설(뗏) 시즌 소비가 물건에서 서비스와 경험으로 바뀌었다. 여행·레저·외식·편의 서비스 지출이 상품 지출보다 빠르게 늘고 있다. 1~8월 숙박·음식 서비스 매출이 16.4%·여행 서비스가 17.1% 성장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소유보다 경험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소비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

 

③  누가 프리미엄을 사는가 - 월 76만 원이 기준선

씨미고 소비자 프로파일에 따르면 월소득 1,500만 동(약 76만 원·592달러) 이상 가구가 1,580만 가구(전체 가구의 56.2%)에 달한다. 약 5,620만 명이 이 소득 계층에 속한다. 이들이 베트남 프리미엄 소비의 핵심 구동력이다. 도시 소비자는 외식과 프리미엄 선호가 강하고 농촌 소비자는 필수 소비에 집중하는 구조가 뚜렷하다. 중간 소득층(월 750만~1,500만 동·약 38만~76만 원)은 "균형 소비와 가치 최적화" 패턴을 보인다. 좋은 것을 사고 싶지만 꼭 필요한 곳에만 쓴다는 것이다.

소비자 금융이 이 소비 행태를 증폭시킨다. 씨미고와 인베스트베트남 공통 분석에 따르면 소비자 금융이 베트남 국내총생산의 26%·소매 판매의 58%를 담당한다. 무이자 할부·후불 결제가 당장 현금이 없어도 프리미엄 제품을 살 수 있게 만든다. 전자제품 20~50% 성장의 배경에 할부 결제 확산이 있다는 분석이다.

 

④  한국 브랜드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 소비 역설은 한국 브랜드들에게 명확한 전략 신호를 준다. 중간 가격대는 가장 위험한 구간이다. 베트남 소비자들이 중간 가격대를 가장 먼저 포기하고 저가 현지 브랜드 아니면 프리미엄 외국 브랜드를 선택하는 양극화가 진행 중이다. 한국 브랜드가 "중간 가격·중간 품질"로 포지셔닝하면 가장 경쟁하기 어려운 구간에 놓인다. 반대로 "건강·안전·한국산 신뢰도"를 앞세운 프리미엄 포지셔닝은 성장 가능성이 높다. 홍삼·건강기능식품·프리미엄 스킨케어·고급 생활용품이 이 구간에 속한다.

채널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 씨미고는 "이제 베트남에서 전통 소매·현대 소매·전자상거래·라이브스트리밍·소셜커머스가 동시에 경쟁하는 구조적 단절이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온라인에서는 가격 정보가 즉시 비교된다. 오프라인에서는 체험이 구매를 유도한다. 두 채널을 동시에 잘 운영하는 것이 지금 베트남 시장의 필수 조건이다.

 

★  편집부 평가

9.95% 성장이라는 헤드라인 뒤에서 베트남 소비자들은 조용히 계산하고 있다. 연료비가 오르고 물가가 오르는 동안 불필요한 것은 아끼고 꼭 필요하거나 특별한 것에 집중한다. 이것이 "성장하는 경제의 신중한 소비자"가 보내는 신호다. 중간 가격대의 압박과 프리미엄의 성장이라는 이 구조는 베트남 소비자들이 더 이상 단순히 "사는 나라"가 아니라 "고르는 나라"가 됐다는 것을 뜻한다.


출처: NSO/VNA "1-8M 2026 retail sales VND5,235.5T +13.3% YoY VND3,947.6T goods +12.8% accommodation +16.4% travel +17.1%" (2026.09.04) · TradingEconomics/Eulerpool "Sep 2026 retail sales +14.1% YoY" · Kenno/NIQ/HSC "1-5M FMCG +4.3% price 3.6pp volume +1% electronics jewelry +20-50% Omachi 50%+ gross margin double-digit growth" (Emerging Vietnam 2026 panel) · Cimigo "Consumer Outlook 2027 Oct14: Q1 53% Q2 41% Q3 54% confidence RON95 +22% diesel +43% since Feb 2026 selective up-trading experience over ownership" (2026.10.14) · InvestVietnam "2026 trading down commoditized trading up health safety emotional premium consumer finance 26% GDP 58% retail" · Cimigo Consumer Profiles "1,580万 households above VND15M/month 56.2% ABCD class 56.2M people"